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130
한자 松湖里[松旨面]
영어공식명칭 Songho-ri[Songji-mye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소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개설
송호리[송지면]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13.121㎢
가구수 443가구
인구[남/여] 918명[남자 469명|여자 454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송호마을은 바닷가에 연해 있는데, 마을 주변에 소나무가 울창하고, 마을 앞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하여 송호(松湖)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영암군 송지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리, 신풍리, 송종리, 내동리, 갈두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로 개설되었다. 고려시대 때 송호리[송지면]는 특수 지역의 하나인 송정부곡(松井部曲)이었다. 이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옛 영암군 남쪽 100리[약 39.27㎞]에 송정부곡이 있다.”라는 기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또한 송정부곡 지역이었다는 것은 송종마을의 지명에서도 알 수 있다. 현재 송호마을, 중리마을, 송종마을, 땅끝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송호마을은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송호정(松湖亭)으로 나타나 있다. 황씨가 최초로 입향하여 살다가 어느 해 큰 홍수가 일어나 마을 앞 불등 둑이 터지면서 물줄기가 바뀌고 돌림병이 심하게 돌자 마을을 떠났다고 전한다. 마을 뒤에는 황폐화된 황씨 묘가 많다. 400년 전부터 홍천용씨와 밀양박씨가 들어와 마을이 이루어졌다고도 한다. 중리마을은 1750년경 김해김씨 김철(金喆)이 현산면 초호리에서 이주하여 정착하고 평산신씨와 혼인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김철은 경기도 수원에서 살았는데 임진왜란을 피하여 남하한 후 현산면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호구총수』에 중리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볼 때, 1750년 전에 이미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송종마을은 약 300년 전 선산김씨 김유(金濡)가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땅끝마을은 약 400년 전 김해김씨와 밀양박씨가 들어와 터를 잡고 살았다고 전한다. 그런데 미황사 사적비를 보면 신라 749년(경덕왕 8)에 한 석선(石船)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獅子浦)에 닿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사자포는 땅끝마을 앞바다를 지칭하는 것이어서 이때부터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환경]

송호마을은 동쪽으로 미봉산, 북쪽으로 천제를 지내는 천제산, 서쪽으로는 만호바다와 땅끝송호해변이 있다. 서쪽바다와 마을 사이에 500여 그루의 소나무로 이루어진 해남 송호리 해송림이 있다. 송종마을은 중리마을과 송호마을 사이에 있다. 마을 뒤에는 효종산이, 앞에는 모종산(暮鐘山)[갈송산, 갈호점, 먼중머리]이 있으며, 남동쪽의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하천을 이루면서 마을을 관통한다. 서쪽 해안에 해송림이 있는데, 해송림은 바닷바람을 막고 마을 기운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중리마을은 해안선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마을 앞에는 대나무가 무성한 대섬이 있고, 마을 뒤로는 큰까끔산이 있다. 대섬까지는 약 800m이며 물이 빠지면 대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대섬까지 걸어가는 길을 큰자리등이라 한다. 대섬 앞에는 쑤기담[독살]이 있는데, 옛말에 “중리 쑤기담은 무논 서 마지기하고도 안 바꾼다.”라고 할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다. 땅끝마을은 한반도 육지 최남단에 있는 마을이다. 동해에서 남해를 거쳐 서해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현황]

송호리(松湖里)[송지면(松旨面)]는 북쪽으로 소죽리, 동쪽으로 통호리, 남쪽과 서쪽으로 바다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13.121㎢이고, 송호리, 송종리, 중리, 땅끝리의 4개 행정리에 443가구, 918명[남자 469명, 여자 45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해남 땅끝 송호마을은 2009년 행정안전부에 의해 정보화 마을로 지정되었다. 주 생업은 전복과 김 양식이며, 20여개의 김 가공 공장이 있다. 어장에서는 멸치와 문어를 잡는다. 해수욕장이 있어 많은 가구가 민박집을 운영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다. 해남 송호리 해송림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1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송종마을은 농업을 중심으로 어업을 겸하는 가구가 몇 있다. 어업은 대부분 김 양식을 하며, 김 가공 공장이 있다. 예전에는 바닷가에 쑤기담을 설치하여 고기를 잡았다. 중리마을의 주민들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언덕을 개간하여 밭농사를 짓고 있다. 땅끝마을은 서해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어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왜구들의 침탈이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갈두진을 두었고, 객사와 관아를 두었다. 갈두산에는 조선 초기에 설치되었다가 고종 때 폐지된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다. 땅끝송호해변과 땅끝마을 일대는 1986년에 땅끝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해남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을 하고 살았지만 땅끝국민관광지가 되면서 음식점과 숙박업이 늘고 있으며, 대부분 어업과 상업을 겸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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