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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1001
한자 申鉉國
영어음역 Sin Hyeonguk
이칭/별칭 사현(士賢),직당(直堂)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박종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학자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성별
생년 1869년연표보기
몰년 1949년연표보기
본관 평산

[정의]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유학자.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사현(士賢), 호는 직당(直堂).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으로, 조부는 신태원(申泰元)이며, 아버지는 가정(稼亭) 신만균(申萬均)이다. 어머니는 함평이씨로 이설서(李卨緖)의 딸이다.

[활동사항]

1869년(고종 6) 12월 8일 경기도 여주군 소곡리에서 출생하였다. 8세에 외종조 국포(菊圃) 이직서(李稷緖)에게 배웠으며 재예가 출중하였다. 13세부터 국산(麴山) 곽정현(郭鼎鉉)에게 3년을 배우고 19세인 1887년에 족숙(族叔) 신율정(申栗亭)을 따라 충청북도 충주군 봉항리에서 독서하고, 이듬해 해주오씨 오한영(吳漢泳)의 딸과 혼인하였다.

1896년(고종 33)에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를 알현하였다. 신현국박세화가 있는 용하구곡(用夏九曲)에 머물며 박세화의 강회에 참석하였다. 또 금계(錦溪) 이근원(李根元), 산재(山齋) 이좌승(李佐承), 의암(毅庵) 유인석 등을 찾아가 강회와 제례에 참석하였다.

1907년(순종 1) 대로사(大老祠) 장의(掌議)에 천거되고, 1909년 박세화가 설성(雪城) 만생산(萬生山) 아래 창동(昌洞)으로 이적(移籍)하자 배알하였는데, 1910년 한일병합으로 박세화가 순절하자 장례에 참여하고 제문(祭文)을 지었다. 또한 신현국은 한일병합의 부당함을 투서하며 크게 꾸짖다가 붙잡혀 대구감옥에서 3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윤응선박세화의 영당을 건립하고 용하영당이라 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직당집(直堂集)』과 『학례유범(學禮遺範)』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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